2010년 04월 02일
너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새로운 공간 위에서, 다른 질감의 시간 속에서, 호흡을 멈춘다.
나는 지금껏 종이 위에 쓰여진 세상만 알아왔다. 물론 그 검은 글씨로 곱게 씌어진 삶은, 그 나름의 지침으로서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걷게 하기도 하고 종이와 잉크냄새라는 휴식으로 나를 쉬게끔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무를 베어낸 종이 위에 싸구려 잉크로 수만 번도 넘는 반복으로 인쇄된 것이었다 어차피
나는 이제 이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진짜 만남들과 좋은 사람들과 그들과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와 질감과 그들과 함께 경험하는 세상과 공간과 무익함을 겪고 있다. 이제서야라고 해야할까 벌써부터라고 해야할까? 감사 외의 모든 말에 의미가 없다.
나는 이 실재의 삶 앞에서 이제까지 빨아들였던 모든 문자들을 새하얗게 잊어버리기에 이른다. 그것들이 홀홀 전소되어 깔끔한 색소로 사라지다. 나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니 간신히 걷는 법만 아는 상태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다. 처음 보는 안면들 앞에서 공포에 질려 떨다. 하지만 동시에 고양감과 행복감으로 입가가 벌어지다
# by 벤더 | 2010/04/02 20:35 | 상기